한국인들 자국의 역사에 대하여 너무 잔인하다
1904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을 시작했고, 그 군대의 치료를 위하여 서울에서 만주로 떠나던 의료진이 있었고, 그들의 간호를 위하여 모집 되었던 여성들이 있었다. 이 때 한국은 사실상 일본에게 함락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집 된 한국의 여성들이 군인들의 성노예로 전락하게 된 시작이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여성의 짧은 저고리 밑으로 가슴을 드러낸 사진을 전시하는 등의 풍자를 빙자한 조롱도 있었다. 한국인 모두 속았던 것이다.
(1904년 러일 전쟁의 진실)
러-일전쟁은 아시아에서 백인을 이긴 유일한 승리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1905 한국의 식민지는 시작 되었고, 각종 구실과 교육 명목으로 세뇌를 시키면서 창시개명과 의복 변화를 시도 하였고, 교육을 통하여 한국의 고유성은 미개한 것으로 바뀌고, 필요 없는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아직도 이것을 믿고 있다.
1937 중-일전쟁은 그렇게 일본인으로 바뀐 한국인들을 참전 시킨 것이다. 40년 동안 한국의 성인들은 대다수 일본인을 위한 부역에 동원되었고, 여성들조차 몸빼(작업용) 바지를 강제로 입게 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거나 광부로 사라졌다. 이것이 중일 전쟁 중에 한국에서 어린 학생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일본의 전쟁을 위하여 위문품을 만드는 조선의 여인들)
일본군대의 성노예 증거는 사실상 국가적으로 나서서 해결 할 의사가 있었다면 이미 존재 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생존하고 있었던 위안부(성노예) 평균 75세 이상자가 되어서 고국으로 귀향 하는 것 보면서 그들을 한국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떠나게 해드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사망하고 이제 54명이 남는 동안 그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해준 것은 그들의 상처를 해부하면서 전시하고, 일본과 국제 무대에 세우면서 무엇을 했는지? 그 잔인한 진행하는 방식에 화가 치민다. 위안부의 역사, 이것이 당사자들에게 배상 가능한 일이었을까?
(1904년 러일 전쟁의 군인을 위하여 만주로 출발하는 적십자소속의 군인이 서울에서)
한국은 가르마가 있는 긴 머리가 오래 유지 되었다. 위안부를 생각해서 제작했다는 소녀상은 왜 단발일까? 공식적으로 일본의 식민지 표상이었던 종군 위안부(성노예)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의복의 변화, 단발령의 필요성, 모두 일본인에 의해서 시작 된 것인데, 위안부를 위한 소녀상 까지 단발이어야 했나? 정말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아는 사람들이 시행 한 것 맞는 일인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성이 요구 되는 일이다.
(1904년)
초-고령자가 되신 분들, 러시아에서 모시고 와서 편안한 적 없었다. 거리집회에 전시용으로 참여 시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 잘못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한국의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것인지? 반문 하게 된다.
1905 누가 한일 합방을 막을 수 있었을까? 누가 한국을 구할 수 있었을까? 세계사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 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과 아시아 그리고 일본은 다시 러-일 전쟁과 중-일 전쟁에서 승리를 했던 그 넓은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지금 무엇을 현실적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환영하는 한국)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