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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와 기성세대 합의점은 어디에...

내가 사용하는 웹에는 트위터 블락 기능이 없다. 잠시, 20대와 40대와의 갈등 문제에 끼어서 생각을 하면, 4 0대~50대들은 어린시절에 형제가 많아서 먹는 밥 한 그릇을 가지고도 싸움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구두닦이도 해보고 공장에서 미싱을 밟아본 사람들이 뜻밖에도 많을 것이다. 대학을 나오거나 못나오거나 사장이 되고 사모님이 되어 나름대로 아이들을 낳고 키웠고, 과잉보호라고 생각 할 만큼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보호를 해왔다. 현재 20대 중에서 배가 고프고, 병에 걸려 버림받고, 기본 생계가 위협을 받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감히, 너의 부모와 동시대를 살면서 이 나라를 이룩해온 기성세대들에게 너 따위는 죽어도 돼!! 라고 할 수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 있는지를 묻고 싶다. 나는 죽어도 된다. 왜냐? 장애가 심하고 공부를 할 형편이 못되어서 결국 어렵게 노동력 착취를 당하는 노무자로 일하던 손가락이 휠 정도였고, 사업을 할 때는 돈의 노예가 되더니, 아픈 몸이 더 아프게 되어서 경추가 더 이상 말을 안 들으니까 너희 말대로 쓸모없는 몸이 맞다. 적어도 이 나라의 문제에 대하여 한마디도 안하고 신앙을 강요하거나, 그저 공부나 잘하라고 하는 인사들 보다는 미친 테러리스트처럼, 짱돌을 들고 학교에 가서 스스로 해결해보라고 말하는 저 사고뭉치 사십대의 말에 동감은 하면서도 그것이 정당한 해결 방법이 아니라서 동의하지 않았다. 고교 이하 기본 교육만을 받더라도 모두 자립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충분한 교육 수준이라고 나는 한국의 교과서를 열어보면서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인이라고 대접 받고 싶어 하면서도 무조건 욕설로 맛 서려는 의식으로 기성세대들에게 너무 지나친 아우성을 하는...

정치적 통일은 정말 어려운 것일까?

각종 사건과 사고로 인하여 몸은 비록 예전보다 많이 나빠져서 움직일 수조차 없을 때도 많지만, 마음은 자유로워 졌다.  시간이 날 때 마다 인터넷을 열어본다. 그리고 메일만 사용하던 구글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TWITTER 계정을 오래 전에 만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추종하던 스님 한 분 찾아보는 것이 유일한 일이었다. 그런데, 올라오는 글들이 엄청나다.  덕분에 나의 호기심에 불길이 당겨졌다. 할 말이 점점 많아진다?  SMS로 주고받아도 될 것을 올리는 글도 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을 같이 고민 하는 사람들의 글들이 보이고, 이것은 지나치다! 생각되는 글들이 보인다. 여당과 야당은 진짜 물과 기름처럼 화합이 안 되는 이유를 이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왜곡과 과장, 여과 없는 전달의 파장, 당최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글에 대하여 한번쯤 왜?를 고민을 안 하는 것 같다. 그냥, 자기와 코드가 맞는 글이면 바로 알티,(RT)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한다.  그러니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라면 더욱 더 받아드리는 강도가 클 것 같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까지 뭔가 하나 잡았다고 생각되면, 그것으로 이슈화 시켜서 자신의 인지도를 떠보려는 속셈들이 보인다. 정말, 아닌 것은 아니다. 나라를 위하여 국민이 있어야 한다면, 국민을 위하여 바른 정치를 해야 한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사실 한번도 우리만의 민족성을 가져 본적이 없다고 생각된다.  1000번 에 가까운 침입과 현재는 중국이지만 고대 당나라 시기부터 송나라 문물을 받아드리고, 원나라 시기에는 이제는 욕이 된 화냥년의 본래의 말, 환향녀(원나라에 공물로 받쳐 졌다가 돌아 온 수많은 여성)까지 등장할 만큼, 속국이 되어 있었다. 원나라는 몽고족이 지배했었다. 그다음 명이 등장한다. 주자학을 내세우면서 사대부가 생성된 조선으로 바뀌고, 이때는 아예 왕세자 책봉이 되면 허락까지 받아야 했을 정도인데, 그 문화가 오즉...

바른정치와 국가적인 안전대비 시스템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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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길어지고, 여름철 물가도 계속 오르고 있지만,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는 정계의 문제점들이 많아 보인다.  혼자만의 느낌이겠지만, 이번 장마에서는 지난해 겨울, 생매장을 한 수 많은 가축들의 한이 느껴진다. 살아오면서 유난히 죽음을 많이 접하고 살았지만, 살아 있는 생명들이 그처럼 포크레인에 밀려서 겹겹이 쌓이면서 생매장 당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고 너무 안쓰러웠던 탓일까? 뇌리에서 쉽게 잊어지지 않는다.  잊을 것은 잊어야 하겠지만, 국민의 생활과 직결 되는 여러 가지 안전에 대하여, 국가에서 신경을 쓰지 않고, 늘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던 습성을 버리지 않는 것이 거슬린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이 비교적 투철하다고 알려져 있던 일본도 최근에는 그 기강이 해이해지더니 결국 최악의 원전 사고를 일으켰다.  한국은 빠른 시간에 고도의 성장을 해온 만큼 문제가 많은 편이다. 이제는 국가적인 안전대비, 방역시스템을 철저하게 보완하고 관리해도 될 시기와 능력이 형성 된 것 같은데,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더욱 챙기고 있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어쩌면 모든 것은 국민 개개인의 정치 참여의식의 결여에서 시작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을 뽑는 기준이 그 사람의 행적이 아니라 어느 종교를 가졌으니까? 경제를 살린다는 광고 구호를 믿고 뽑거나 어느 지역 출신을 따지면서 인물 보다는 당을 보고 표를 주는 오류로서 잘못 된 정치와 정경유착, 각종 비리의 온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우익과 좌익, 혹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한국의 살림경제와 인격적 완성도를 위하여 고민하며 정치인들을 바르게 뽑고  지켜보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본 다.  

안철수의 창업과 제도적 보안의 필요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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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는 오는 6월 1일 카이스트를 떠나 서울대 융합 과학 기술 대학 원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성적 인 사람이라고 창업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그 결과 창업이 맞다고 생각되면 도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오히려 실패의 요람이죠. 성공하는 기업은 백에 하나입니다. 중요한 것은 1번의 성공보다 99번의 실패가 사회의 자산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실패를 용인하고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합니다.” http://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35093 위 글은 뉴스의 중간부분과 끝부분 인용글이다. 오늘 날, 다국적 시각에서도 한국은 수출로서 승패를 좌우 할 수 밖에 없는 국가에 속해있다.  이런 나라에서 기업은 중요한 위치이며, 중소기업이 발전을 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창업과 기업운영의 실패가 개인적인 능력과 함량 미달일 수 도 있지만, 운영 실패의 부담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을 막아 줄 필요는 있다. 실패에서 성공으로 바뀔 수 있는  기업들이 상당 수 있으므로 안교수의 이런 제안은 제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나태한 국가는 불행하다.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나태한 국가는 불행하다. 국회의원들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거리를 누비면서 권위에 젖은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한 나라는 현재 말하는 개발도상국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국회의원들이 너무 안이하고 나태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3차 산업의 비율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런 구조적인 잘못을 고치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국내 대학교도 지나치게 인문 계열 쪽에 치우쳐 있고, 인기 있는 몇 개의 학과에만 자본을 투자하는데, 정말 이대로 계속 진행 되면 문제가 커질 것 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걱정하는 것보다 더욱 더 부추기며 거품 경제가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직 고위공직자이고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 통일을 원한다고 하지만, 과연 고위 공직자들 중에서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현재 한국은 사상이 죽어있다. 누군가는 깨어 있어야 하는데, 모두가 잠들어버린 죽음의 국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뜻을 건성으로 흘러 넘기고 일부 지식인들의 두뇌에서 짜여진 각본과 그들만의 탁상공론으로 모든 것을 실행하고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데, 누구하나 반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순간까지 색깔론 들이 대두 되고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한국이 휴전국가이지만, 우리나라는 민주 공화국이 아닌가? 왜 정의를 말하면 빨갱이가 되고 우익, 좌익으로 이분법 적인 의견만 남게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영국도 독일도 이탈리아도... 전 세계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들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때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정의롭지 못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 혹은 개인적으로 부를...

한국의 독도 연대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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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연대를 간략하게 작성 512년 :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이사부, 우산국(울릉도,독도) 복속 1416년 : 공도정책(왜구의 침략을 예방하기 위해) 1618년 : 도꾸가와 막부, 조선 정부 몰래 일본의 무라까와, 오타니 가문에 불법으로 죽도(울릉도) 도해 면허(이는 외국과의 통상을 허가한다는 정부의 허가서)를 발급. 1693년(숙종) : 안용복 사건.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일본막부로부터 인정받음. 1696년 : 안용복의 제2차도일활동. 안용복은 "조울양도감세장신안동지기"라는 깃발을 사용하여 일본에 관직 을 자칭하고 2차 도일을 시도. 안용복은 오끼도를 거쳐 오기슈 연안에 도착하여 호끼슈태수로부터 "울릉도,독도 양도에 침범치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냄. 1881년 : 이때부터 독도의 명칭이 나타남. 울릉도 개척령을 발표하여 척민정책을 취함. 일본 어민의 울릉도 침입에 관해 조선정부가 일본정부에 엄중 항의. 1882년: 울릉도 공도정책 폐기 1900년 대한제국 : 칙령 제41호 울릉군의 관할구역으로서 독도를 정함. 1904년 : 울릉도 호수는 400호에 달함. 여름철에는 수십명의 어민이 독도 부근에 출어하여 섬 위에 작은 집을 만들고 매회 약 10일간 기거함. 1905년 : 일본 각의에서 독도의 일본령 편입을 결의. 내무 대신으로부터 시마네현지사에 훈령(시마네현 소속). 시마네현고시 제40호로 독도의 동현 편입을 발표. 시마네현 송영지사 일행이 독도 현지 조사를 실시한 후 일본정부는 독도를 죽도라 명명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불법적으로 독도를 죽도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였기에 그러한 편입 사실을 공식적으로 공고한 것이 아니라 일개 현에서만 암암리에 편입사실을 발표한 것임) 8월 19일에는 러일 전쟁 이용 목적으로 독도에 망루를 설치. 러일전쟁승리 후인 10월 24일 망루를 철거. ...

短想...기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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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기도... 불나방처럼 위험하고 무모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바라며  감정은 남극의 빙하처럼 차갑게,  삶은 굶주린 늑대처럼 눈빛만 번쩍이며 살더라도  죽는 그 날까지 한점 慈悲心 간직하여라.   미켈란젤로 피에타

신문기자였던 그의 딸e 왜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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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서명 모집 글이 RT되기 시작해서 링크를 열어 봤는데 글e 길면서도 핵심e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이것이 무엇에 대한 진실을 말하려는 것일까? 일까 궁금할 것 같았다. 자료를 찾아서 짝 맞추기를 해보았다. 1989년 3월, 조선일보 기자였던 부지영은 (고)김대중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로 있었을 때, 그들이 해외여행에서 했던 일들과 수행원들의 행위를 신문에 적었고, 수행원의 추태는 비행기 안에서 맨발, 로마교황의 소매를 잡고 사진을 요청, 교황을 “헤이”라고 부르는 등, 다수 나열된다.  이 기사로 인하여 “87억”을 요구하며 평민당에서 조선일보를 고소하였고, 1989년 7월“서경원사건 밀입국 사건”이 알려졌고, 평민당은 고소취하 하면서 <조+평>사건은 끝났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에 (고)김대중은 대통령당선과 노밸 평화상을 받았고, 햇빛정치로 북한에 엄청난 금액을 송금하며 국민들이 금강산은 가게 되었지만, 북한은 변화지 않았다.  (고)김대중 대통령 서거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가? 생각되었는데, 2010년 8월 “김대중 자서전”이 출판되었고, 부지영씨는 (고)김 대통령 자서전 일부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어린(20)딸이 유학도중 인터넷 공격으로 죽었단다.  자신에게도 딸과 똑같이 죽게 하겠다면서 협박을 했다는데,  누가? 왜? 어떻게 해서 그의 딸이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고)김대중 대통령 옹호세력에 의하여 정신적인 압박이 가해졌나? 하는 추측만 가능하다.   아버지로서 부지영 그는 괴로워하며 호소하고 있다.                                              ...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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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Samuel Beckett. Wrote... ♣ 고도를 기다리며  작가 : 사뮤엘 베케트( Samuel  Barclay  Beckett  . 13 April 1906 – 22 December 1989 ) 아일랜드의 더블린 근교 신교도의 중류 가정에서 출생. 「승부의 끝」「오오 아름다운 나날이여」등 세계의 부조리를 응시하는 작품 경향으로 기성 연극을 부정하는 프랑스 신역극의 선구자였다.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  줄거리 제1막 시골 길. 마른 나무 한 그루. 부랑자 에스트라공이 구두와 씨름하고 있다. 지난 밤에 헤어진 블라디미르가 등장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스트라공이 "이제는 가자"고 하자, 블라디미르는 "안 된다"고 한다.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해." "참, 그렇지." 이 문답은 그 뒤에도 반복되어, 그들이 "나무 앞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 주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은 기다리는 고도가 왔다고 생각하는 착각 등이 있고 나서, 채찍을 든 포초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진 러키를 묶은 끈을 끌며 등장한다. 포초는 러키를 괴롭히면서 지껄이고 안고 먹고 마신다. 러키는 울면서 동정하는 에스트라공을 발로 찬다. 이윽고 러키가 현학적이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긴 대사를 말하자, 세 사람은 그에게 덤벼들어 모자를 빼앗아 말을 막는다. 포초는 쓰러진 러키를 일으켜 주고 퇴장한다. 남아 있는 두 사람에게 사내아이가 와서, 고도는 오늘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제2막 앞과 같은 무대이지만, 나무에 잎이 돋아 있다. 블라디미르의 노래. 지난 밤에 헤어진 에스트라공이 구두에 신경을 쓰고 ...

일본의 야욕과 한국의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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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 친구분이 일본과 한국 정치인들이 태도에 관한 고민의 글을 올리셨는데... 그동안 나 역시도 고민을 했던 문제이므로 리플을 달고 싶었지만, 글이 길어지면서 도배를 하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나의 볼르그에서 몇자 적습니다. 일본은 고대부터 바큐후 정권 후. 천황의 힘이 인정된 최근까지 제대로 통일이 되었던 적이 없는 전형적인 약육강식 문화였고, 가장 늦게 제국주의 맛을 봐서 타 제국주의 국가보다 더 지독한 지배근성이 남았으며 그중에서도 극우파들이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조선을 발판으로 만주까지 점령할 수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필리핀 등, 동아시아 전체를 삼키려고 했으나 진주만 공격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가장 피해가 큰 것이 한국이므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지만, 전체를 싸잡아 욕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이 있는 일본의 악마적 요소는 없어지지 않으므로, 한국인들이 조심하면서 더 많은 역사를 바로 알고, 이해를 해야 하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가난에 그 나마의 남아있던 민족성도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과와 용서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으며, 사과를 받고 용서하면, 그들은 오히려 지배근성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正中動” 우리는 강물처럼 조용히 바다로 가서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만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서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고, 무엇이 우리를 이롭게 하는가? 알게 된다면 좋겠는데, 급하게 먹은 찰떡에 체하여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성급한 선진국화로 자질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유감스럽니다.

위안부는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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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의 정신대 (위안부)는 과연 우리가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일까?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  나는 정신대 즉, 조선의 위안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대와 중세, 근데 전 세계적인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조국이 완전 식민지화 되는 일도 드믈었고, 절반의 식민지화만 되어도,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그 나라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중국도 난징에서만 30만 명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위안부는 조선에서만 있었던 것 아니다. 어느 유명하신 분의 표현대로 일본군 창녀였다고 해도, 그들은 평균 연령 15세의 변함없는 조선의 어린 여성들이었다. 정신대 입대하는 소녀들  나는 위안부 관련 기사를 읽을 때 마다 왜, 이렇게 감정에 치우치는 일처리 밖에 못하는 것일까? 솔직히 속이 상했다. 일본의 잘못, 악행을 밝히는 것은 좋은데, 굳이 배상금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 참 못마땅하다는 말이다. 보상금의 명목으로 돈을 받으면 오히려 일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정말 그들을 일본군의 창녀로 만들지 않으려면 일본이 했던 그 행위만 똑바로 알려서 일본의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이며, 굳이 그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으로 보내거나 거리에 앉혀 놓고 구호를 외치면서 난리치는 일들은 정말 못 마땅했었다. 그들의 아픔을 진실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주에 일본이 세웠던 중국의 임시 정부를 통한 만행과 난징에서의 30만명의 수많은 목숨을 살해하고도 일본은 오히려 중국에서 수많은 돈을 챙겼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 일본의 급속한 성장이 가능했었고 진주만 공격까지 했었다. 그리고, 대만, 필리핀에서 까지 위안부를 뽑았었다.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그 것에 대하여 일본에게 얼마나 보상을 받았고, 받으려고 하는지는 나는 무지한 사람이라서 잘 모르고 있다. (중국 난징 학살 피해자들)  그러나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