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11의 게시물 표시

백평훈 아리랑 블루스

"아리랑" 블루스의 주인공  백평훈 소개  http:// bit.ly/exFzC1 아리랑 블루스는  백평훈 감독의 댄스 필름 3부작 중의 마지막 작품으로  한국에서 이민 온 두 명의 아티스트의 인생을 담고 있다. http://vimeo.com/14443428  

Don mclean - Vincent

Don mclean -  Vincent    고흐(1853-1890)  프랑스 화가... 고독한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화가입니다.  천재성과 광기가 엇갈리면서 권총 자살을 한 빈센트 반 고흐에 관련 된 노래 Stary stary nlght Paint your pale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 listen now Stary stary night Flamin'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artist's loving hand ♪ ♪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 라고 부르고 있으며....

Korea's Dokdo, a beautiful island comprised of Dongdo and Seodo. Now you can visit Dokdo through these three-dimensional images.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 라고 부르고 있으며 2010년에 69명이 추가로 호적을 다케시마로 정했다고 한다.  2011년 2월 18일 기준으로  총 520명의 일본인이 죽도(다케시마)를 고향으로 만들었다. 한국인은 1000명 정도가 독도를 고향으로 정하고 있었지만,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아쉽게도 한국의 현정부는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전세계의 지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고 독도를 죽도로 표시하며 일본의 땅으로 만들고 있어서 우리가 현재 노력을 하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독도문제에 대하여 항거 불능의 상태로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 된다. 과거의 지도 자료는 남아 있지만, 세계지도에 응용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미약하다. 일본은 세계지도를 새롭게 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이에 맛서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청소년들에게 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울릉도와 독도를 하나로 통합관리하는 시스템도 괜찮을 것 같다. 앞으로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한국의 독도를 지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의 독도 연대관련 자료

이미지
독도의 연대를 간략하게 작성 512년 :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이사부, 우산국(울릉도,독도) 복속 1416년 : 공도정책(왜구의 침략을 예방하기 위해) 1618년 : 도꾸가와 막부, 조선 정부 몰래 일본의 무라까와, 오타니 가문에 불법으로 죽도(울릉도) 도해 면허(이는 외국과의 통상을 허가한다는 정부의 허가서)를 발급. 1693년(숙종) : 안용복 사건.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일본막부로부터 인정받음. 1696년 : 안용복의 제2차도일활동. 안용복은 "조울양도감세장신안동지기"라는 깃발을 사용하여 일본에 관직 을 자칭하고 2차 도일을 시도. 안용복은 오끼도를 거쳐 오기슈 연안에 도착하여 호끼슈태수로부터 "울릉도,독도 양도에 침범치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냄. 1881년 : 이때부터 독도의 명칭이 나타남. 울릉도 개척령을 발표하여 척민정책을 취함. 일본 어민의 울릉도 침입에 관해 조선정부가 일본정부에 엄중 항의. 1882년: 울릉도 공도정책 폐기 1900년 대한제국 : 칙령 제41호 울릉군의 관할구역으로서 독도를 정함. 1904년 : 울릉도 호수는 400호에 달함. 여름철에는 수십명의 어민이 독도 부근에 출어하여 섬 위에 작은 집을 만들고 매회 약 10일간 기거함. 1905년 : 일본 각의에서 독도의 일본령 편입을 결의. 내무 대신으로부터 시마네현지사에 훈령(시마네현 소속). 시마네현고시 제40호로 독도의 동현 편입을 발표. 시마네현 송영지사 일행이 독도 현지 조사를 실시한 후 일본정부는 독도를 죽도라 명명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불법적으로 독도를 죽도라는 이름으로 명명하였기에 그러한 편입 사실을 공식적으로 공고한 것이 아니라 일개 현에서만 암암리에 편입사실을 발표한 것임) 8월 19일에는 러일 전쟁 이용 목적으로 독도에 망루를 설치. 러일전쟁승리 후인 10월 24일 망루를 철거. ...

短想...기도 1

이미지
나를 위한 기도... 불나방처럼 위험하고 무모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바라며  감정은 남극의 빙하처럼 차갑게,  삶은 굶주린 늑대처럼 눈빛만 번쩍이며 살더라도  죽는 그 날까지 한점 慈悲心 간직하여라.   미켈란젤로 피에타

신문기자였던 그의 딸e 왜 죽었을까?

이미지
🙏추모서명 모집 글이 RT되기 시작해서 링크를 열어 봤는데 글e 길면서도 핵심e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이것이 무엇에 대한 진실을 말하려는 것일까? 일까 궁금할 것 같았다. 자료를 찾아서 짝 맞추기를 해보았다. 1989년 3월, 조선일보 기자였던 부지영은 (고)김대중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로 있었을 때, 그들이 해외여행에서 했던 일들과 수행원들의 행위를 신문에 적었고, 수행원의 추태는 비행기 안에서 맨발, 로마교황의 소매를 잡고 사진을 요청, 교황을 “헤이”라고 부르는 등, 다수 나열된다.  이 기사로 인하여 “87억”을 요구하며 평민당에서 조선일보를 고소하였고, 1989년 7월“서경원사건 밀입국 사건”이 알려졌고, 평민당은 고소취하 하면서 <조+평>사건은 끝났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에 (고)김대중은 대통령당선과 노밸 평화상을 받았고, 햇빛정치로 북한에 엄청난 금액을 송금하며 국민들이 금강산은 가게 되었지만, 북한은 변화지 않았다.  (고)김대중 대통령 서거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가? 생각되었는데, 2010년 8월 “김대중 자서전”이 출판되었고, 부지영씨는 (고)김 대통령 자서전 일부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어린(20)딸이 유학도중 인터넷 공격으로 죽었단다.  자신에게도 딸과 똑같이 죽게 하겠다면서 협박을 했다는데,  누가? 왜? 어떻게 해서 그의 딸이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고)김대중 대통령 옹호세력에 의하여 정신적인 압박이 가해졌나? 하는 추측만 가능하다.   아버지로서 부지영 그는 괴로워하며 호소하고 있다.                                              ...

고도를 기다리며....

이미지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Samuel Beckett. Wrote... ♣ 고도를 기다리며  작가 : 사뮤엘 베케트( Samuel  Barclay  Beckett  . 13 April 1906 – 22 December 1989 ) 아일랜드의 더블린 근교 신교도의 중류 가정에서 출생. 「승부의 끝」「오오 아름다운 나날이여」등 세계의 부조리를 응시하는 작품 경향으로 기성 연극을 부정하는 프랑스 신역극의 선구자였다.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  줄거리 제1막 시골 길. 마른 나무 한 그루. 부랑자 에스트라공이 구두와 씨름하고 있다. 지난 밤에 헤어진 블라디미르가 등장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스트라공이 "이제는 가자"고 하자, 블라디미르는 "안 된다"고 한다. "왜?" "고도를 기다려야 해." "참, 그렇지." 이 문답은 그 뒤에도 반복되어, 그들이 "나무 앞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 주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은 기다리는 고도가 왔다고 생각하는 착각 등이 있고 나서, 채찍을 든 포초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진 러키를 묶은 끈을 끌며 등장한다. 포초는 러키를 괴롭히면서 지껄이고 안고 먹고 마신다. 러키는 울면서 동정하는 에스트라공을 발로 찬다. 이윽고 러키가 현학적이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긴 대사를 말하자, 세 사람은 그에게 덤벼들어 모자를 빼앗아 말을 막는다. 포초는 쓰러진 러키를 일으켜 주고 퇴장한다. 남아 있는 두 사람에게 사내아이가 와서, 고도는 오늘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제2막 앞과 같은 무대이지만, 나무에 잎이 돋아 있다. 블라디미르의 노래. 지난 밤에 헤어진 에스트라공이 구두에 신경을 쓰고 ...

일본의 야욕과 한국의 정치인...

이미지
트윗 친구분이 일본과 한국 정치인들이 태도에 관한 고민의 글을 올리셨는데... 그동안 나 역시도 고민을 했던 문제이므로 리플을 달고 싶었지만, 글이 길어지면서 도배를 하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나의 볼르그에서 몇자 적습니다. 일본은 고대부터 바큐후 정권 후. 천황의 힘이 인정된 최근까지 제대로 통일이 되었던 적이 없는 전형적인 약육강식 문화였고, 가장 늦게 제국주의 맛을 봐서 타 제국주의 국가보다 더 지독한 지배근성이 남았으며 그중에서도 극우파들이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조선을 발판으로 만주까지 점령할 수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필리핀 등, 동아시아 전체를 삼키려고 했으나 진주만 공격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가장 피해가 큰 것이 한국이므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지만, 전체를 싸잡아 욕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문제점이 있는 일본의 악마적 요소는 없어지지 않으므로, 한국인들이 조심하면서 더 많은 역사를 바로 알고, 이해를 해야 하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가난에 그 나마의 남아있던 민족성도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과와 용서의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으며, 사과를 받고 용서하면, 그들은 오히려 지배근성을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正中動” 우리는 강물처럼 조용히 바다로 가서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만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풍요로운 사회가 되어서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고, 무엇이 우리를 이롭게 하는가? 알게 된다면 좋겠는데, 급하게 먹은 찰떡에 체하여 죽을 수도 있는 것처럼, 성급한 선진국화로 자질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유감스럽니다.

위안부는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미지
 일본군의 정신대 (위안부)는 과연 우리가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주제일까?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  나는 정신대 즉, 조선의 위안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고대와 중세, 근데 전 세계적인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조국이 완전 식민지화 되는 일도 드믈었고, 절반의 식민지화만 되어도,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그 나라의 젊은 여성들이었다. 중국도 난징에서만 30만 명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 위안부는 조선에서만 있었던 것 아니다. 어느 유명하신 분의 표현대로 일본군 창녀였다고 해도, 그들은 평균 연령 15세의 변함없는 조선의 어린 여성들이었다. 정신대 입대하는 소녀들  나는 위안부 관련 기사를 읽을 때 마다 왜, 이렇게 감정에 치우치는 일처리 밖에 못하는 것일까? 솔직히 속이 상했다. 일본의 잘못, 악행을 밝히는 것은 좋은데, 굳이 배상금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 참 못마땅하다는 말이다. 보상금의 명목으로 돈을 받으면 오히려 일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정말 그들을 일본군의 창녀로 만들지 않으려면 일본이 했던 그 행위만 똑바로 알려서 일본의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할 것이며, 굳이 그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으로 보내거나 거리에 앉혀 놓고 구호를 외치면서 난리치는 일들은 정말 못 마땅했었다. 그들의 아픔을 진실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주에 일본이 세웠던 중국의 임시 정부를 통한 만행과 난징에서의 30만명의 수많은 목숨을 살해하고도 일본은 오히려 중국에서 수많은 돈을 챙겼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 일본의 급속한 성장이 가능했었고 진주만 공격까지 했었다. 그리고, 대만, 필리핀에서 까지 위안부를 뽑았었다. 중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그 것에 대하여 일본에게 얼마나 보상을 받았고, 받으려고 하는지는 나는 무지한 사람이라서 잘 모르고 있다. (중국 난징 학살 피해자들)  그러나 한국...